
항호르몬치료란?
메디컬 오 스위트 · 이동희 병원장
"수술도 항암도 다 끝났는데 약을 또 먹어야 한다고요?"
유방암 치료를 마친 분이 처방전에서 "타목시펜"이나 "레트로졸" 같은 이름을 처음 보고 하시는 말입니다. 하루 한 알이라지만 기간이 5년, 길게는 10년입니다. 어떤 약인지, 폐경 여부에 따라 왜 다른 약을 쓰는지 모른 채 시작하면 그 긴 시간을 버티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는 항호르몬치료를 네 편에 나눠 다룹니다. 첫 편은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에 왜 이 치료를 하는지, 폐경 전후로 왜 다른 약을 쓰는지, 함께 쓰는 졸라덱스는 무엇인지입니다.
왜 호르몬을 막는 치료를 하나요?
유방암 가운데 상당수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신호로 받아 자랍니다. 조직검사 결과지에 "호르몬수용체 양성", "ER, PR 양성"이라고 적혀 있다면 이런 유방암입니다.
수술로 눈에 보이는 암은 모두 떼어냈습니다. 하지만 검사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암세포가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이런 세포가 몇 년이 지나 다시 자라나는 경우가 있어서 치료 후 5년이 지나서도 재발할 수 있습니다. 항호르몬치료는 남아 있을지 모르는 세포가 에스트로겐 신호를 받지 못하게 오랫동안 막아 재발을 줄이기 위해 하는 치료입니다.
에스트로겐 신호를 끊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암세포가 에스트로겐을 받는 자리(수용체)를 먼저 차지해 버리는 방법과, 에스트로겐이 몸에서 만들어지는 것 자체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어느 쪽을 쓰는지는 폐경 여부로 갈립니다.
반대로 호르몬수용체 음성 유방암에서는 이런 치료의 재발 감소 효과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음성인데 항호르몬제를 처방받았다면 왜 먹는지 담당의에게 한번 확인해 보세요.
폐경 전이라면 — 타목시펜(± 졸라덱스)
폐경 전 여성에게 가장 많이 쓰는 항호르몬제는 타목시펜입니다. 암세포에는 에스트로겐이 와서 붙는 자리, 곧 수용체가 있습니다. 타목시펜이 그 자리를 먼저 차지해 버리면 에스트로겐이 와도 붙을 곳이 없어 자라라는 신호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몸에서 에스트로겐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를 막는 약은 아닙니다. 그래서 폐경 전 여성이 먹어도 난소는 계속 일하고 생리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점은 2편에서 다시 다룹니다.
재발 위험이 높은 경우에는 난소에서 나오는 에스트로겐까지 줄이기 위해 졸라덱스 같은 주사를 함께 맞기도 합니다. 졸라덱스는 난소기능억제제(GnRH 작용제)로, 4주 또는 12주 간격으로 배에 맞는 피하주사입니다. 난소에 보내는 신호를 조절해 에스트로겐 생성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방식이라 폐경과 비슷한 상태가 되는데, 주사를 멈추면 난소 기능은 대부분 돌아옵니다. SOFT·TEXT 연구는 재발 위험이 높은 폐경 전 환자에서 졸라덱스를 타목시펜과 함께 쓰거나, 경우에 따라 졸라덱스와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함께 썼을 때 재발이 더 줄었다고 보고했습니다.
타목시펜의 기본 복용 기간은 5년입니다. 1만 2천여 명이 참여한 ATLAS 연구에서 호르몬수용체 양성 환자가 타목시펜을 5년이 아니라 10년 먹었을 때 재발과 유방암 사망이 더 적었습니다. 효과는 특히 진단 후 10년이 지나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래서 재발 위험이 높다면 10년까지 이어가기도 합니다.
유방에서는 막고, 다른 곳에서는 돕는 약
타목시펜에는 독특한 성질이 있습니다. 유방에서는 에스트로겐을 막지만 자궁내막이나 뼈에서는 거꾸로 에스트로겐과 비슷하게 작용합니다. 장기마다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제"라고 부릅니다.
이 성질 때문에 생기는 일이 있습니다.
폐경 후 여성에서는 뼈를 지켜 주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반면 폐경 전 여성은 원래 에스트로겐이 충분해서 오히려 골밀도가 조금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자궁내막과 질에서는 에스트로겐처럼 작용해서 내막이 두꺼워지거나 분비물이 늘 수 있습니다. 왜 자궁을 신경 써야 하는지, 어떤 출혈을 알려야 하는지는 3편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몸 안에서 더 강한 형태로 바뀌는 약
타목시펜은 간에서 CYP2D6라는 효소를 거쳐 엔독시펜이라는 훨씬 강한 형태로 바뀝니다. 약효의 상당 부분을 이렇게 바뀐 형태가 냅니다.
그래서 이 효소를 강하게 막는 약을 같이 먹으면 타목시펜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약을 조심해야 하는지는 2편과 4편에서 정리하겠습니다.
폐경 후라면 — 아로마타제 억제제
폐경이 되면 난소는 더 이상 에스트로겐을 만들지 않지만, 지방조직 등 몸의 다른 곳에서 "아로마타제"라는 효소를 이용해 소량의 에스트로겐을 계속 만듭니다. 아로마타제 억제제(레트로졸·아나스트로졸·엑세메스탄, 상품명 페마라·아리미덱스·아로마신 등)는 이 효소를 막아 에스트로겐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를 줄이는 약입니다.
작용 원리가 타목시펜과 다른 만큼 신경 써야 할 불편도 다릅니다. 타목시펜이 자궁내막이나 혈전 쪽을 주의해야 하는 약이라면, 아로마타제 억제제는 관절통·근육통이나 골밀도 감소를 주의해야 하는 약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약이라기보다 작용 원리와 그에 따른 관리 포인트가 다르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자세한 부작용은 2편, 안전신호는 3편에서 다룹니다.
폐경 전 여성에게는 아로마타제 억제제만 단독으로 쓰지 않습니다. 난소가 계속 에스트로겐을 만들고 있어서 이 약만으로는 충분히 억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폐경 전이면서 재발 위험이 높은 경우에는 졸라덱스로 난소 기능을 먼저 억제한 뒤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함께 쓰기도 합니다.
복용 기간은 어떻게 정하나요?
타목시펜과 아로마타제 억제제 모두 기본 기간은 5년이고, 재발 위험이 높으면 10년까지 이어가기도 합니다. 치료 중간에 폐경이 확인되면 타목시펜에서 아로마타제 억제제로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확한 기간과 전환 시점은 재발 위험과 그동안의 부작용을 함께 보고 담당의가 정합니다.
기억해 둘 것
-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에스트로겐 신호를 받아 자람, 항호르몬치료는 그 신호를 끊어 재발을 줄이는 치료
- 폐경 전: 타목시펜(에스트로겐 수용체 차단), 재발 위험이 높으면 졸라덱스(난소기능억제) 병용
- 폐경 후: 아로마타제 억제제(에스트로겐 생성 자체를 억제)
- 두 계열 모두 기본 5년, 재발 위험에 따라 10년까지
- 타목시펜은 자궁내막에서는 에스트로겐처럼 작용하므로 자궁 관리가 필요, 간에서 더 강한 형태로 바뀌므로 함께 먹는 약을 확인할 것
- 작용 원리가 달라 신경 써야 할 부작용도 다름 — 내가 먹는 약이 무엇인지 알고 읽는 것이 중요
이유를 알고 먹는 약
5년, 10년은 짧지 않습니다. 그 사이 부작용 때문에 그만 먹고 싶은 날도 옵니다. 그럴 때 이 약이 무엇을 막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 다시 버틸 힘이 생깁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참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조정할 방법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항호르몬제를 먹으며 흔히 겪는 변화를 묻고 답합니다. 타목시펜의 안면홍조와 밤에 흘리는 땀, 불규칙해진 생리, 질 건조, 기분과 체중의 변화는 물론 아로마타제 억제제에서 흔한 관절통, 졸라덱스를 함께 맞을 때 생기는 변화까지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지 정리하겠습니다.
LOVE YOUR LIFE
회복은 치료의 끝이 아니라, 삶을 다시 시작하는 과정입니다.
Medical O Suite — Recovery & Resil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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